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_크리스 밀러 핵심 정리입니다.
지금까지의 반도체 역사와 향후 반도체 전쟁의 향방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달해주는 책입니다.
이 글만 읽어도 될 정도로 핵심 내용만 요약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주제는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_크리스 밀러
핵심 정리
입니다.
『칩 워 -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는
반도체의 역사를 단순한 기술 발전의 관점이 아닌
정치, 군사, 경제가 맞물린 글로벌 권력투쟁의 흐름 속에서 풀어냅니다.
크리스 밀러는 냉전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반도체 패권의 역사를 치밀하게 분석하며
왜 이 작은 칩이 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핵심이 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칩 워』의 핵심 내용을 각 파트별로 정리해
반도체 전쟁의 맥락을 쉽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목차
1. 냉전의 칩
2. 아메리칸 월드의 회로망
3. 리더십의 상실?
4. 되살아난 미국
5. 집적회로에 갖힌 세계?
6. 해외 이전은 혁신인가?
7. 중국의 도전
8. 반도체로 숨통을 조이다
1. 냉전의 칩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군사력뿐 아니라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데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다.
1947년 12월, 벨 연구소의 존 바딘, 월터 브래튼,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여 진공관을 대체할 수 있는 전자소자의 시대를 열었다.
벨 연구소는 트랜지스터 특허를 외부에 공개했고,
일본과 유럽의 전자회사들도 이를 바탕으로 트랜지스터 개발에 나섰다.
1956년,
윌리엄 쇼클리는 자신의 반도체 연구소를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세우고 인재들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쇼클리의 독단적인 경영에 실망한 8명의 젊은 과학자들은
1957년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를 창업했다.
이들은 이후 실리콘밸리의 창업 문화와 기술 기반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다.
페어차일드는 최초로 실리콘 기판을 대규모로 상용화하며
실리콘 기반 반도체 산업의 본격화를 이끌었다.
1959년,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는 평면 공정 기술을 활용한 집적회로(IC)를 고안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잭 킬비도 같은 해에 다른 방식의 집적회로를 독립적으로 개발했다.
두 사람은 각각 실리콘(노이스)과 게르마늄(킬비)을 기반으로 집적회로를 만들었으며,
이후 특허 분쟁을 벌였다.
결국 두 발명은 모두 인정받았고, 킬비는 200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집적회로는 미군의 유도무기, 통신, 컴퓨터 시스템 등에 빠르게 채택되며 군수산업의 핵심 부품이 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첨단 기술 도입을 위해 고등연구계획국(ARPA, 후일 DARPA)을 설
립하여 반도체 기술을 지원했다.
아폴로 우주 프로그램은 집적회로 대량 수요를 창출하며,
반도체 대량생산 체제를 가속화했다.
1962년 당시 집적회로의 90% 이상이 군사 목적이었다.
민간 전자기기 시장은 후발적이었지만
국방수요가 기술 발전을 주도했다.
이 시기 반도체의 크기를 줄이고 성능을 높이는 경향이 확산되었고,
이것이 나중의 ‘무어의 법칙’으로 이어진다.
고든 무어는 1965년
“칩의 트랜지스터 수는 2년마다 2배가 된다”는 유명한 예측을 발표했다.
이 ‘무어의 법칙’은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산업의 기술 로드맵으로 기능했다.
인텔 창립 이전부터 무어와 노이스는 반도체 기술의 상용화와 확장을 구상하고 있었다.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의 군사적 활용은 베트남전과 냉전 전략의 핵심을 이루었다.
정밀 유도무기, 조기경보 시스템, 인공위성 통신은 반도체 없이는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이 시기 미군은 전투기, 전차, 무전기, 미사일 시스템에 반도체 회로를 본격적으로 통합하기 시작했다.
박격포 탄도 유도장치와 같은 정밀 무기 시스템도 반도체 회로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쇼클리는 반공주의자였으며, 반도체를 군사 기술로 활용하려는 집착이 강했다.
그러나 그의 사회적 편견과 리더십 실패는 더 많은 인재 이탈을 낳았다.
반면 페어차일드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새로운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실리콘밸리를 확장해 나갔다.
1968년,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Intel)을 창립했다.
인텔은 DRAM, SRAM,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며 새로운 반도체 시대를 열게 된다.
이 무렵부터 반도체는 단순한 부품을 넘어, 정보화 시대의 기초 인프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인텔의 초기 기술력은 페어차일드에서 이어진 공정 기술과 설계 경험에 기반했다.
초기 인텔은 계산기용 메모리 칩 시장을 겨냥했으며, 소비자 전자기기에 쓰일 수 있는 반도체 제품을 준비했다.
이들은 이후 IBM PC에 들어가는 CPU로 연결되며, 세계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
실리콘밸리는 이 시기부터 ‘기술 창업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트랜지스터의 개발과 집적회로의 상업화는 개인 발명자보다
조직과 시장, 정부의 협력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미 국방부와 NASA는 핵심 반도체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다.
벤처캐피털과 기술자들이 손잡은 실리콘밸리는 정부의 전략적 자금 지원 덕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앤디 그로브가 회고하며 언급한 젊은 기술자들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냉전은 반도체 기술을 단순한 발명에서 군사전략·산업전략으로 격상시킨 시기였다.
2. 아메리칸 월드의 회로망
냉전 시기 소련은 미국 반도체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자체 개발보다는 기술 복제에 집중했다.
소련은 벨 연구소의 트랜지스터 발명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복제하기 위해 대규모 첩보 활동을 벌였다.
KGB는 미국과 서유럽의 반도체 장비, 공정 자료, 회로 설계도를 밀수하거나 스파이를 통해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소련은 독립적 기술 생태계가 부재했고, 대량생산·표준화 능력에서 미국에 크게 뒤처졌다.
반면 미국은 트랜지스터 특허를 외부에 개방하고,
국제 기술표준화를 주도하며 동맹국 확산 전략을 추진했다.
미국의 전략은 단순한 기술 확산이 아닌,
‘친미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이었다.
일본의 소니는 1950년대 후반, 벨 연구소로부터
정식 트랜지스터 라이선스를 구매해 기술 내재화를 시작했다.
1957년, 소니는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 휴대용 라디오 TR-63을 출시하며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이 제품은 일본 전자산업의 기술력과 미국 시장 공략의 이정표가 되었다.
미국은 이처럼 자국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들의
시장 참여를 용인하며 국제적 기술 종속 구조를 유도했다.
소련은 트랜지스터 생산에는 성공했지만, 집적회로(IC) 개발에서는 10년 이상 뒤처졌다.
소련의 반도체 산업은 실리콘밸리식 창업이나 민간 기술 확산 구조 없이 국가 주도의 폐쇄형 체제였다.
미국의 페어차일드, TI, 모토로라 등은 반도체 제조 자동화, 수율 개선, 장비 개발에서 앞서 나갔다.
1960년대 중반 미국 기업들은 군수 목적 외에도
계산기, 시계, 카메라 등 민간 전자기기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른바 ‘트랜지스터 걸스’라 불린
숙련된 여성 노동자들이 정밀 조립 공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이들은 인건비가 낮고 손재주가 좋아 대량 생산 자동화가 어려웠던 시절 반도체 공정의 주역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반도체를 미사일, 유도무기, 전자전 시스템에 활용하면서
‘정밀 타격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는 1970년대 이후 ‘스마트 무기’ 전략의 토대가 되었고,
반도체는 ‘군사 정보화’의 핵심 인프라로 간주되었다.
미 국방부는 페어차일드 등 주요 업체에 대규모 장기 계약을 제공해 기술 상업화를 유도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동맹국과의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동맹국에 기술을 이전하면서도 생산 중심은 미국에 두려 했으나,
예외적으로 일본에 광범위한 기술이전이 이뤄졌다.
이는 훗날 일본의 급부상으로 이어졌고,
‘베끼시오(Copy it)’라는 전략이 외교문서에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 외교관들은 일본, 한국, 대만에 반도체 기술을 공유하면서 공급망 통제를 시도했다.
이러한 기술 외교는 전쟁무기와 동일한 전략 가치로 간주되었으며,
실제로 협상 카드로 사용되었다.
1968년,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Intel)을 창립했다.
인텔은 초기에는 DRAM 등 메모리 중심이었지만,
곧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일본의 계산기 제조업체 비스컴(Busicom)은 인텔에 주문형 계산기 칩 개발을 의뢰했다.
인텔의 테드 호프(Ted Hoff)는 계산기용 칩 12개 대신
하나의 범용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그 결과 1971년 인텔은 세계 최초의 범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를 출시했다.
인텔은 비스컴과의 계약을 다시 협상하여
4004에 대한 판매 권한을 회수하고, 상업용으로 확장했다.
4004의 성공은 곧 이어진 8008, 8080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개인용 컴퓨터 CPU의 원형이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인텔은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8080을 통해
군·산·민간 시장을 모두 장악하기 시작했다.
인텔의 기술력은 고든 무어의 R&D 집중 전략과 앤디 그로브의 실행 중심 경영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인텔은 생산 공장 운영도 내부화하며 ‘설계-제조-판매’의 수직 통합 모델을 유지했다.
인텔 내부에는 ‘실행이 전략을 이긴다’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다.
앤디 그로브는 헝가리 출신 이민자 출신으로, 효율과 통제 중심의 조직문화를 강조했다.
국방부는 이 시기부터 ‘상쇄 전략(offset strategy)’을 채택하며,
소련과의 전면 대결 대신 기술 격차를 무기화하기로 한다.
상쇄 전략은 첨단 정찰, 정밀 유도, 전자전 중심 전력 구성으로 전환하는 군사 전략이었다.
반도체는 이러한 상쇄 전략의 핵심 요소였으며, 미 국방부는 인텔·TI·모토로라에 지속적인 수요를 보장했다.
반도체 산업은 이제 단순한 상업 기술이 아닌, 국가 전략의 근간이 되었다.
동시에 미국에서는 팹리스 설계 회사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주류 모델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에는 반도체 관련 스타트업이 급속히 증가하며 기술 생태계가 넓어졌다.
IBM은 이 시기 자체 CPU 개발도 계속했으나, 1980년대 이후 인텔 칩을 채택하게 된다.
인텔은 IBM PC에 8088 칩을 공급하면서 컴퓨터 산업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탑재한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윈텔 동맹’이라는 구조를 만들게 된다.
인텔의 경쟁자였던 모토로라와 내셔널 세미컨덕터는 수율과 공정 기술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미국은 세계 반도체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정밀 공정과 자동화 기술을 무기로 시장 잠식에 들어가고 있었다.
3. 리더십의 상실?
1970년대 후반, 미국 반도체 산업은
DRAM 가격 폭락과 일본 기업의 압도적인 기술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본의 도시바, 히타치, NEC, 후지쓰 등은
정밀 공정, 품질 관리, 자동화에서 미국 기업을 앞질렀다.
일본은 생산 설비 국산화와 장기 투자 전략을 기반으로 수율과 가격 경쟁력 모두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1980년대 초, 일본 기업들은 64K DRAM 시장의 80%를 장악하며 세계 시장을 사실상 지배했다.
미국의 인텔, 모토로라, 내셔널 세미컨덕터 등은 불량률과 생산 비용에서 일본 기업을 따라잡지 못했다.
1985년, 인텔은 DRAM 사업에서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앤디 그로브는 당시 인텔이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에 빠졌다고 표현하며,
체질 개선을 추진했다.
그로브는 메모리 사업 철수 결정을 “가장 힘들지만 가장 필요했던 선택”으로 회고했다.
일본 기업들은 제품 불량률을 0.1% 이하로 유지하며, 품질에서 압도적인 신뢰를 쌓았다.
반면, 미국 기업은 혁신 중심의 문화는 유지했지만 제조에서의 우위는 점차 상실했다.
미국 내에서는 “우리는 쓰레기를 판다(We sell junk)”는 자조적인 표현이 기술인들 사이에 퍼지기도 했다.
미국 국방부는 반도체 공급망의 불안정성과 품질 저하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미국 상무부도 반도체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정책 개입의 필요성을 검토했다.
일본 정부는 MITI(통산성)를 중심으로 VLSI 프로젝트를 추진해 민관 공동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다.
NEC, 도시바, 히타치 등 5대 기업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고밀도 집적회로 양산 기술을 목표로 했다.
미국 언론은 이 프로젝트를 “일본판 맨해튼 프로젝트”라며 위협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분열되어 있었고,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 수익 개선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품질 향상, 공정 자동화, 신기술 개발에서 일본에 계속 뒤처졌다.
미국 기업은 벤처 자금 의존도 높고, 연구개발비 삭감이 흔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는 정부 개입 없이는 회복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1986년, 미국과 일본은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하고, 일본 내 미국 반도체 점유율 보장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이를 우회하기 위해 제3국을 통한 수출, 자회사를 통한 판매로 대응했다.
협정은 실효성이 낮았고, 미국 반도체 업계의 위기의식은 오히려 더 커졌다.
1987년 도시바 기계 부문이
소련에 잠수함 소음 제거 가공기술(CNC 밀링머신)을 불법 수출한 사건이 발각된다.
이 사건은 ‘도시바-콤콤 스캔들(Toshiba-Kongsberg affair)’로 불리며,
미국 내 반일 감정을 폭발시켰다.
도시바의 기술 덕분에 소련 잠수함의 정숙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치 문제로 확대되었다.
미국 의회는 도시바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논의했고, 애국적 소비 캠페인도 등장했다.
도시바는 공식 사과했으나,
사건은 미국 기술 우위가 일본에 의해 역전될 수 있다는 공포를 심화시켰다.
미국 내 여론은 기술 이전을 제한하고,
자국 내 생산기지를 복원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 사건은 이후 미국 반도체 산업 재건을 위한 공공 투자와 법제화 논의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1989)이 출간되며 미국의 기술 종속을 공개 비판했다.
저자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일본이 더는 미국의 기술 식민지로 남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일본 내 자존심 회복 정서와 기술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책의 논지는 “기술력에서는 이미 일본이 미국을 넘어섰다”는 인식이었다.
한편,
미국 반도체 업계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연구개발보다 마케팅, 영업에 예산을 더 쓰는 구조로 바뀌었다.
인텔, 내셔널 세미컨덕터, AMD 등은
DRAM·SRAM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며 회생 전략을 모색했다.
기술 경영자들은 “더 이상 미국은 기술을 선도하지 못한다”는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는 반도체 산업 공동 대응을 위해
민관 협력 구조인 SEMATECH 설립을 추진했다.
SEMATECH은 1987년 텍사스 오스틴에 설립되었고, 인텔, TI, 모토로라 등 주요 업체가 참여했다.
초기 자금의 절반은 국방부가 제공했고, 나머지는 민간 기업들이 공동 부담했다.
SEMATECH은 생산 장비 개발, 공정 표준화, 수율 향상을 목표로 한 기술 컨소시엄이었다.
미국은 이를 통해 일본의 품질 우위에 대응하고, 자국의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복원하고자 했다.
일부 기업은 SEMATECH 참여를 통해 생산 기술을 확보한 후 독자 행보를 다시 모색했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기술 수출 통제, 외국인 투자 규제, 기술 보호법 제정에도 나섰다.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산업 자산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경제 안정을 위한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었다.
SEMATECH 설립과 함께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틀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4. 되살아난 미국
1985년, 인텔은 일본과의 DRAM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 생산을 중단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중심 전략으로 전환했다.
앤디 그로브는 이 결정을 “인텔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올바른 선택”이라고 회고했다.
그로브는 이후 인텔을 효율성과 실행 중심의 조직으로 재편하며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인텔은 1985년 80386, 1989년 80486 프로세서를 잇달아 출시하며 기술 리더십을 회복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을 통해 구축된 ‘윈텔(Wintel)’ 구조는
인텔 CPU와 윈도우 OS의 결합을 통해 시장 표준이 되었다.
IBM이 1981년 자사 PC에 인텔 칩(8088)을 채택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인텔은 CPU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며 DRAM 충격에서 벗어났다.
미국 내에서는 반도체 산업 재건을 위한 민관 협력 플랫폼
SEMATECH이 1987년 출범했다.
SEMATECH은 정부와 민간의 공동 출자로 설립되었으며,
텍사스 오스틴에 본부를 두었다.
주요 참여사는 인텔, 모토로라, 내셔널세미컨덕터, AMD, TI 등 미국의 핵심 반도체 기업들이었다.
SEMATECH은 생산 공정 개선, 장비 국산화, 수율 향상에 집중하며
일본에 대응할 기술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미국 반도체 산업은 제조 기술 측면에서 일본을 다시 추격하기 시작했다.
고든 무어는 인텔의 R&D 예산을 확대하며, 미세 공정 전환을 주도했다.
인텔은 이 시기 설계, 제조, 브랜드 전략을 통합한 기술 기반 종합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1년 걸프전은 반도체 기반 정밀 유도무기의 위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반도체 기술이 다시 한번 군사 전략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같은 시기 한국은 미국, 일본으로부터의 기술 도입을 바탕으로
반도체 산업을 급속히 발전시키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1983년 메모리 사업을 시작했고, 1989년에는 4M DRAM 양산에 성공하며 주목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생존 산업”이라며 전사적 투자를 단행했다.
미국 반도체 업계는 한국을 일본에 대한 기술 견제 수단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전략적 논리가 미국 내에서 실제 산업정책 논리로 받아들여졌다.
삼성은 고품질 DRAM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며, 일본 제품을 빠르게 대체했다.
미국 정부는 일본 제품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한국 제품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 입장을 취했다.
삼성, 현대전자, 금성사(후일 LG전자)는 미국 시장에서 점차 존재감을 키워갔다.
TSMC는 1987년 설립되었고, 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파운드리 모델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설계 전문 스타트업들은 점차 팹을 포기하고
TSMC에 생산을 맡기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기술·경제·군사 모든 면에서 단극적 우위를 갖게 되었다.
소련 KGB 산하 T국장은 내부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미국보다 15년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소련은 미세공정 기술, 제조장비, 공정 수율에서 미국과 일본에 도달하지 못했다.
냉전 종식은 미국이 반도체 기술을 더 이상 군사 목적만이 아닌
상업 전략의 중심에 놓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미 국방부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을 줄이면서도, 핵심 기술 통제는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인텔은 1993년 펜티엄(Pentium) 브랜드를 도입하며 고성능 CPU 시장을 선점했다.
펜티엄은 인텔의 기술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며, 기업과 소비자 시장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기 인텔의 경쟁자였던 AMD는 인텔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기반으로 독립 칩을 생산하고 있었다.
미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경쟁에서 밀렸지만, CPU와 설계 중심 구조에서는 우위를 되찾았다.
SEMATECH은 EUV 리소그래피 기술 초기 개발, CMP 공정 개선 등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 시기 버블 붕괴로 인해 투자가 위축되었고,
도시바·히타치 등은 반도체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했다.
한국과 대만은 미국 기술과 장비를 바탕으로 반도체 생산을 늘려갔고,
생산 거점의 아시아 집중 현상이 강화되었다.
미국 기업들은 점점 더 팹리스(fabless) 설계 중심으로 전환하고,
제조는 아시아에 의존하는 구조로 이동했다.
인텔은 예외적으로 자체 공장(팹)을 유지하며 수직통합 모델을 고수했다.
앤디 그로브는 1997년 CEO로 승진하며, 인텔을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이끌었다.
그는 『Only the Paranoid Survive』라는 책을 통해 기술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생존 전략을 제시했다.
이 책은 실리콘밸리 경영자들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필독서가 되었다.
미국 반도체 산업은 일본의 충격 이후 재편되었고, 기술 중심주의와 브랜드 전략을 결합하게 된다.
1990년대 중후반, 엔비디아, 브로드컴, 퀄컴 등 신규 팹리스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잇따라 등장했다.
이 기업들은 설계에 집중하고 생산은 TSMC, UMC, 삼성 등에 위탁하면서 새로운 분업 구조를 형성했다.
이 시기부터 ‘설계는 미국, 제조는 아시아’라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기본 구조가 자리 잡는다.
미국은 설계·장비·브랜드에 집중하며, 생산은 동아시아에 위탁하는 효율 중심 전략을 정착시켰다.
5. 집적회로에 갖힌 세계?
1987년, 대만 정부와 필립스의 공동 출자로 설립된 TSMC는 세계 최초의 전속 파운드리 기업이었다.
창립자 모리스 창은 미국 TI 출신으로, 설계와 제조를 분리한 ‘파운드리 모델’을 구체화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반도체 제조가 고비용 구조가 되었고,
팹리스(fabless) 설계 회사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TSMC는 설계사가 자체 팹 없이 생산을 위탁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 구조를 바꿨다.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애플 등 주요 미국 기업들이 점차
TSMC에 제조를 위탁하게 된다.
TSMC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세공정 기술과 수율에서 경쟁사들을 앞서기 시작했다.
특히 애플은 아이폰용 A 시리즈 칩 생산을 위해 TSMC와 독점적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2020년 기준, 세계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90% 이상이 대만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정보기술 생태계가 단일 지리적 거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다.
미국 내에서는 “실리콘밸리는 더 이상 실리콘을 만들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은 2010년대부터 반도체 자립을 국가 전략으로 설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2014년 중국 정부는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빅펀드)’을 설립하고,
SMIC, YMTC 등 국영 중심 기업을 육성했다.
하지만 중국은 핵심 장비, 특히 첨단 리소그래피 장비 확보에 실패하며 기술 병목에 직면했다.
가장 중요한 기술적 장벽은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였다.
EUV 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ASML의 EUV 시스템은 수백 개 기업과 수십 년의 기술 개발이 집약된 복합 시스템이다.
이 장비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독일의 정밀 렌즈, 일본의 부품, 네덜란드의 설계가 통합되어 있다.
ASML은 미국 인텔, 한국 삼성전자, 대만 TSMC에만 EUV 장비를 공급해 왔다.
미국은 2019년부터 ASML에 대해 중국 수출을 중단하라고 압박했고, 네덜란드 정부는 이에 동조했다.
이에 따라 중국 SMIC는 7nm 이하 공정 진입이 사실상 차단되었다.
2020년 이후,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은 자체 칩 설계 역량은 확보했으나, 제조는 제재로 봉쇄되었다.
화웨이는 TSMC를 통해 칩을 생산하다가, 미국 수출 통제 조치로 칩 공급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미국 상무부는 2020년 5월, 화웨이와 그 계열사에 대한 반도체 장비·기술 수출 전면 금지를 발표했다.
중국의 5G, AI, 국방 관련 반도체 개발이 큰 타격을 받았고, 기술 자립 시도는 한계에 직면했다.
EUV 장비 가격은 한 대당 1.5억 달러 이상이며, 세계 연간 생산량도 수십 대 수준에 불과하다.
EUV 없이 5nm 이하 공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에 따라 미세공정 기술은 지정학적 무기가 되었다.
미국은 반도체를 ‘21세기의 석유’로 간주하며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애플은 A14, A15 칩을 모두 TSMC의 5nm 공정으로 생산하며,
TSMC와의 기술 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애플은 생산 자체는 아시아에 위탁하지만, 설계와 IP는 미국 내에서 독점하고 있다.
이는 ‘설계는 미국, 제조는 대만·한국’이라는 글로벌 분업 구조를 더욱 고착시켰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자동차·서버·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동시에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겪었다.
GM, 포드, 폭스바겐 등의 자동차 공장이 반도체 부족으로 조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태는 반도체가 전 산업의 기반이며, 공급망 중단이 경제 전반에 파급된다는 사실을 각국에 각인시켰다.
미국, 유럽, 일본은 반도체 자국 생산 비율을 높이기 위한 국가 전략을 수립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CHIPS and Science Act’를 발의해 반도체 제조 공장에 대한 보조금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5nm급 공장을,
삼성은 텍사스에 3nm급 공장을 착공하기로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내 반도체 제조는 고비용 구조, 인력 부족, 승인 지연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ASML은 EUV 장비 미국 내 생산 이전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네덜란드 본사 중심이다.
이처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기술이 한 기업, 한 나라에 집중된 구조는 전 세계적인 불안 요인이다.
미국은 이러한 병목 구조를 ‘기술적 병목(chokepoint)’이자 전략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2022년 10월, 미국은 반도체·AI·슈퍼컴퓨터용 핵심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전면 차단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이 조치는 미국인 기술자의 중국 기업 근무까지 금지하는 이례적인 내용을 포함했다.
네덜란드와 일본도 동참하여, 반도체 장비 3국 협력 규제 체제가 구축되었다.
반도체 공급망이 정치, 외교, 군사 전략과 완전히 결합된 것이다.
2022년, TSMC 회장 마크 리우는 “우리가 멈추면 전 세계 산업이 멈춘다”고 공개 발언했다.
그는 대만에 대한 무력 공격은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대만 해협에서의 분쟁은 세계 경제 시스템 전체에 리스크를 줄 수 있다.
이처럼 반도체는 기술이면서도 동시대 지정학의 가장 민감한 전선이 되었다.
이상으로
칩 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_크리스 밀러
핵심 정리
파트 6부터의 내용은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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